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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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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관광|문화유적|도지정유산

도지정유산

송정 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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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

  • 종목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1990년 6월 30일
  • 규모1동
  • 시대조선 시대
  • 소재지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264

상세정보

조선조(朝鮮朝)의 광해군(光海君) 때 폐모사건(廢母事件)에 항소(抗訴)한 세속 7광(七狂) 10현(賢)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곳에 모여 음풍영월(吟風詠月)하며 어지러운 세상에 벼슬을 버리고 세월을 보내던 곳이라 한다.

이들 후손들이 영당(影堂)을 세우고 7광도(七狂圖)와 10현도(十賢圖)를 봉안하고 조상의 높은 기상과 우국(憂國)의 뜻을 기리며 춘.추(春秋) 중정(中丁)에 제사(祭祀)를 지낸다.
7광(七狂)이라 함은 월봉(月峰), 김대립(金大立), 오무재(悟無齋), 김응빈(金應贇), 부휴제(浮休齊), 김 감(金 堪), 호암(壺巖), 송치중(宋致中), 난곡(蘭谷), 송민고(宋民古), 천묵(天默), 이상형(李尙馨), 관산(觀山), 이 탁(李 倬)을 칭하며 그들을 기린다.

10현(賢)이라 함은 칠광 가운데 김응윤, 김 감, 송치중, 송민고, 이 탁 외에 명천(鳴川), 김 관(金 灌), 췌세(贅世), 김정(金濎), 만오재(晩悟齋), 김 급(金 汲), 월오(月悟), 김우직(金友直), 월담(月潭), 양몽우(梁夢禹)를 가리킨다.
송정(松亭)은 무성리(武城里) 성황산(城隍山) 동쪽에 있으며, 광해(光海) 때 세칭 7광(七狂)과 10현(賢)이 모여서 놀던 곳이다.

광해의 폭정(暴政)이 극도에 이르자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항소(抗訴)를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 모여 자적(自適)의 세월을 보내니 세상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7광과 10현이라고 불렀다.

7광(七狂)
김대립(金大立), 김응빈(金應贇), 김 감(金 堪), 송치중(宋致中), 송민고(宋民古), 이상형(李尙馨), 이 탁(李 倬)

10현(賢)

김응빈(金應贇), 김 관(金 灌), 김 감(金 堪), 김 급(金 汲), 송치중(宋致中), 김우직(金友直), 송민고(宋民古), 양몽우(梁夢禹), 이 탁(李 倬), 김 정(金 濎)

송정중수기(松亭重修記)

태산은 산과 물이 좋은 곳이다.
칠보산이 둘러있고 오계천이 돌아 흐르는 곳에 정자가 있으니 그 이름이 송정이다.
옛 신유년에 호남의 10현이 있었으니 조정이 혼탁하고 윤기가 문란하니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강령(三綱五倫)을 일으킬 뜻을 갖고 서로 마음을 같 이하여 시를 읊고 강론을 통하며 함께 계를 조직하여 그림을 그려 세상에 전하니 이를 십현이라한다.
정자 이름을 송정이라 함은 솔의 절개를 비유함이다.
십현의 사적은 옛날 사람이 기록하여 알 수 있지만, 정자의 건축이 그 당시였는지 그 뒷일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이 터를 정하고 자손이 그림을 모앙하다가 순조 때 계유년의 계문서를 보면 선인들이 남긴 글에 갑신년에 정자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뒤 45년 무진년에 우리 선조 도정공이 일곱집의 힘을 합하여 중수하니 3칸의 집에 8칸 마루가 지어졌다.
기해년에 집안 할아버지 춘우정 선생과 백부 화계헌공이 그림이 없어질까 걱정하고 자기 집에 모시면서 여러 사람과 의논하고 협력을 얻어 정자 위에 한 칸을 더 세우고 그림을 모시었다.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 문과 담을 쌓았다.
나의 아우 환상이 유사로 김환진 송영조 두 사람과 상의하여 중문과 축대와 정문길과 담장, 그리고 집처마를 고치고 주위에 화초 나무를 심고 돌을 쌓고 흙을 돋아 경치가 새로워졌다.
병인년에 여러 사람이 나에게 청하였다.
강령과 윤기가 퇴폐함이 오늘과 같이 심한바가 없어 우리 동지들은 도덕을 닦고 우의를 더하여 선조들의 선덕을 더 빛나게 함이 이 정자가 오래가고 더욱 새로워질 것이다.


무진 7월에
십대손 김환풍 근기

송정중수기

광해 임금때 왕권이 해이되어 인권이 박탈되면서 장안의 변란이 극도에 이르니 명망있는 사람과 충절하는 선비가 모두들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숨게 되었다.
태산(지금의 七寶)의 송정(松亭)의 여러 선비들이 그러했다.
그 이름과 이력이 자상하게 마을 입구 비에 기록되어 있다.
앞의 7광은 스스로 칭한 것인데 뒤에 이른 10명은 후세 사람들이 십현이라 말했다. 모든 어진 사람은 태어나고 사는 것은 다르나 그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기강을 세운 것은 같은 바이다.
그 중에 육율과 달음의 고절로 화창함도 같다.
이 정자가 여러 번 황폐 하였으나 지난 무술년에 두 칸을 수리하고 그림을 잘 모시고 계축년에는 문과 벽을 수선하여 겨울에도 거처하게 되었다.
이 일에는 송병권, 김직술, 김방훈 여러분과 우리 아저씨 평 술씨가 힘썼으니, 이는 중일단사(中一端事)를 이음이다.

저 무성한 수십그루 소나무의 맑은 바람소리는 그 절개를 자랑하면서 그 때 그 분들의 주위를 돌면서 손으로 어루만지는 현상 이 상연하다.
지금 풍속이 퇴폐하고 강상(三綱五倫)이 땅에 떨어져 세상의 환란이 옛날보다 천백곱이 되니 여러 어진이가 지금 있어라도 어찌할 것인가.
자손된 사람으로 휴식하며 모 양할 따름이다.
송영조와 친구 김환각이 말하기를 이 정자가 세운 지 오래되어 삼백년이 넘 었으니 자손들은 감회를 가지고 있으며 그 마음으로 술 마시고 함께 시를 지어 뒷날의 자료 로 아니 할까. 나도 그리할 것이다.


중수유사 김영돈, 김환종, 송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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